인도계 말레이시아인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인도계 말레이시아인은 말레이시아에 거주하는 인도 혈통의 사람들이다. 고대 인도와 동남아시아 간의 교류를 통해 말레이시아에 인도 문화가 전파되었으며, 식민지 시기에 노동력 유입으로 인도계 인구가 증가했다. 현재 말레이시아 인구의 약 6.6%를 차지하며, 슬랑고르 주에 가장 많이 분포한다. 인도계 말레이시아인은 다양한 사회경제적 계층과 직업군에 종사하며, 힌두교를 중심으로 다양한 종교와 문화를 가지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말레이시아 인도 국민 회의(MIC) 등 여러 정당을 통해 대표성을 가지며, 경제적, 사회적 차별과 종교적 갈등, 고등 교육 기회 부족 등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인도계 말레이시아인 | |
---|---|
일반 정보 | |
명칭 | 말레이시아 인도인 |
인구 | 2,019,600명 |
인구 비율 | 말레이시아 인구의 6.6% (2020년) |
거주 지역 | 말레이시아 반도 서해안 (셀랑고르 주, 느그리슴빌란 주, 페락 주, 페낭 주, 쿠알라룸푸르, 크다 주, 조호르 주에 주로 거주) 싱가포르 (2010년 20,483명) |
사용 언어 | 말레이시아 타밀어/타밀어 (대다수) 영어 말레이어 맹글리쉬 (크리올) 멜라유 체티 기타 인도 언어 (펀자브어, 힌디어, 텔루구어, 말라얄람어, 칸나다어 등) |
종교 | 주로 힌두교 소수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 시크교, 자이나교, 조로아스터교, 바하이교 |
관련 민족 | 인도 타밀족 스리랑카 타밀족 텔루구족 말라얄리족 친디아인 체티 버마 타밀족 드라비다인 싱가포르 인도인 모리셔스 인도인 피지 인도인 남아프리카 공화국 인도인 동남아프리카 인도인 디아스포라 카리브해 인도인 |
역사적 배경 | |
기원 | 말레이시아 인도인의 약 80%는 영국 제국의 마드라스 관구 (현재의 타밀나두 주, 텔랑가나 주, 안드라프라데시 주, 케랄라 주)에 뿌리를 두고 있음. |
사회경제적 지위 | |
특징 | 과거에는 노예에서 현대에는 하층 계급으로 변화함. |
추가 정보 | |
관련 연구 | https://www.epw.in/journal/2021/18/special-articles/servitude-underclass.html |
2. 역사
인도계 말레이시아인의 역사는 크게 세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 '''제1기: 식민지 이전 시기''' - 고대 인도가 무역, 종교 전파, 전쟁 등을 통해 동남아시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시기 말레이시아는 슈리비자야, 카다람, 마자파힛 등 '인도화된 왕국'의 일부였으며, 대인도 문화권에 속했다.
- '''제2기: 식민지 시기''' - 1511년 말라카가 포르투갈에 점령된 후, 아폰수 드 알부케르크의 정책에 따라 인도인들이 이주했다. 이후 영국 식민지 시대에는 페낭, 멜라카, 싱가포르를 중심으로 인도인 노동자, 상인, 군인 등이 유입되었다.
- '''제3기: 현대''' - 1990년대 이후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에 건설, IT, 금융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기 위해 인도인들이 이주해 오고 있다.
2. 1. 제1기: 식민지 이전 시기

고대 인도는 무역, 종교적 선교, 전쟁 및 기타 형태의 접촉을 통해 동남아시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식민지 이전의 말레이시아는 슈리비자야, 카다람 및 마자파힛과 같은 '인도화된 왕국'의 일부였으며, 이는 대인도로 알려진 문화 지역의 일부를 형성했다. 아소카의 칼링가 침공과 사무드라굽타의 남쪽 원정 동안 인도에서 동남아시아로의 첫 번째 이주 물결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있다.[9]
아랍 및 인도 상인들은 해상 무역을 통해 동남아시아 남부 지역을 포함한 이 지역을 여행했다.[10] 자바의 실렌드라 왕들은 말레이 반도와 남부 샴의 일부를 장악할 수 있었다. 왕들은 인도로부터 불교 선교사들을 환영하여 그들의 대승 불교 가르침을 받아들였으며, 이는 그들의 영토로 퍼져나갔다. 그러나 태국 중부 및 북동부는 기원전 3세기에 아소카 황제가 보낸 선교사들에 의해 전파된 상좌부 불교의 소승 불교 가르침을 계속 고수했다.
인도가 반도에 도착한 후 불교가 전파된 또 다른 이론은 8세기에 칼링가가 하부 버마를 정복한 후 그 영향력이 점차 반도로 퍼져나갔다는 것이다. 고대 인도의 칼링가는 현재의 오리사와 북부 안드라 프라데시에 위치해 있었다. 7세기에 인도네시아 왕국은 인도에 있는 칼링가를 따라 칼링가라고 명명되었다.[11] 중국 자료는 이 왕국(''홀링'')을 약 604년경 불교 학자들의 중심지로 언급하며, 이후 산자야 또는 마타람 왕국에 의해 가려졌다. 가장 유명한 칼링가 통치자는 라투 시마이다.
약 1700년 전부터 간가 네가라, 고대 케다, 슈리비자야와 같은 인도화된 왕국의 존재에 대한 증거가 있다.[12] 타밀라캄 왕국과 말레이 반도 사이의 초기 접촉은 팔라바 왕조 (4세기부터 9세기) 와 촐라 왕조 (9세기부터 13세기) 의 통치 기간 동안 매우 긴밀했다. 타밀 상인들이 말레이 반도 항구와 맺은 무역 관계는 카다람 (고대 케다) 및 랑카수카와 같은 인도화된 왕국의 출현을 이끌었다.[13] 더욱이, 촐라 왕 라젠드라 촐라 1세는 11세기 동안 카다람 (슈리비자야)으로 원정대를 파견하여 그의 보호를 구하고 왕위에 앉히기 위해 그 나라를 정복했다. 촐라는 인도양과 벵골 만에 강력한 상선대와 해군을 가지고 있었다. ''Periplus''의 저자는 세 종류의 선박을 구별하는데, 지역 교통을 위한 가벼운 연안 항해선, 더 복잡한 구조와 더 큰 운송 능력을 가진 대형 선박, 마지막으로 말라야, 수마트라, 갠지스강으로 항해하는 대형 원양 선박이다.[14] 말라카 술탄국에서 치티 사람들은 라자 무달리아르, 말라카의 샤반다르(항구 책임자) 및 벤다하라 툰 무타히르와 같은 유명한 말라카 술탄국의 벤다하라의 행정에 큰 역할을 했다.
2. 2. 제2기: 식민지 시기

1511년 말라카(말레이시아)가 포르투갈에 의해 식민지화된 후, 포르투갈 정부는 아폰수 드 알부케르크의 정책에 따라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한 인도 여성들을 데려오도록 탐험가들을 장려했다. 이들은 고아 가톨릭(콘칸인 가톨릭)과 봄베이 동인도인(마라티인 후손인 가톨릭)이었다. 혼혈 삼베딕 브라만, 고아인, 포르투갈인 후손인 쿠파리도 도착했으며, 이들의 자녀는 이미 말레이 인구와 통혼하여 민족적 정체성을 잃었다.
1786년부터 1824년까지 페낭, 멜라카, 싱가포르 등 해협 식민지가 영국에 의해 인수되면서 인도 노동력의 유입이 꾸준히 증가했다. 이들은 상인, 경찰, 농장 노동자, 식민지 군인(세포이 참조) 등이었다. 또한, 영국 식민 정부에서 일하기 위해 영어를 잘 구사하는 인도인들이 대거 이주했다.[12]

19세기와 20세기 초, 농장 설립으로 대규모 노동력이 필요해지자 강가니 시스템 하에서 일하는 인도 이주민들이 유입되었다. 20세기 초 강가니 시스템이 종료된 후에는 일부 인도인들이 스스로 말라야로 가는 비용을 지불하기도 했다. 이주 노동자들은 주로 타밀족(약 80%)이었으며, 텔루구족, 말라얄리족, 벵골족, 펀자브족도 있었다. 타밀 이주민들은 주로 타밀 나두 출신이었다.[15]
이들은 상업 및 교육을 받은 도시 인도인들과는 달랐다. 도시 인도인들은 타밀족, 텔루구족, 말라얄리족, 펀자브족, 벵골족 외에도 구자라트족, 신드족, 마르와리족 등 "승객 인도인"으로 도착한 이들이었다. 도시 인도인들은 힌두교, 기독교, 시크교, 이슬람교 등 다양한 종교를 믿었다. 시크교는 주로 경찰에서 일했으며, 다른 북부 인도인들은 사업에 종사했다. 말라얄리족, 실론인, 기독교 타밀족은 정부 및 사립 화이트칼라 직종에 종사했고, 체티아르는 대부업 또는 금융업에, 벨랄라르와 무슬림 타밀족은 다양한 종류의 사업에 종사했다.[16]
영국령 말라야와 싱가포르의 인도 인구는 주로 미혼이거나 인도와 스리랑카에 가족을 둔 성인 남성이었다. 따라서 인구는 말라야로의 이민과 인도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유출에 따라 자주 변동했다. 1901년 해협 식민지와 말레이 연방 주에 거주하는 인도 인구는 약 명이었다. 1931년에는 말라야와 싱가포르에 명의 인도인이 있었고, 셀랑고르 주에서는 원주민인 말레이인보다 인도인이 더 많았다.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많은 인도 남성과 여성이 버마로 인도 국민군에 합류하여 떠났고, 수천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1957년 인도 인구는 명으로 증가했지만, 독립 이후 영국 기관과 회사가 떠나면서 공무원 및 농장의 화이트칼라 계층이 떠나 인구 증가율이 감소하기 시작했다. 이후 낮은 출산율과 더 나은 교육 및 경제적 기회를 찾아 싱가포르, 호주, 영국 등으로 이민을 떠나면서 인도인은 중국인과 마찬가지로 말레이시아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계속 감소했다.
2. 3. 제3기: 현대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에는 건설, 엔지니어링, 식당, IT, 교육 및 금융 분야에서 일하기 위해 인도 국적자들이 유입되었다.[1] 이들 중 다수는 싱가포르에서 영주권을 취득하여 싱가포르 인구의 거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1] 숙련되지 않은 노동자들은 주로 인도 식당에서 일한다.[1] 또한 현지 인도인과 결혼한 인도 아대륙 출신의 외국인 배우자들도 있다.[1]3. 인구 통계
2020년 현재 말레이시아 인구의 6.6%는 인도인이다.[1]
말레이시아 내 인도인 공동체의 지리적 분포는 민족 및 직업별 구분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남인도 타밀족은 고무 농장과 철도에서 다수를 차지했으며, 페낭과 싱가포르의 부두에서 일자리를 찾기도 했다. 슬랑고르는 인도인 인구가 가장 많은 주이며, 느게리슴빌란은 인도인 인구 비율이 가장 높은 주이다.
주 | 인구 | |||
---|---|---|---|---|
2010년[17] | 2015년 | |||
총계 | 비율 | |||
조호르 | 217,058 | 7.1% | 230,700 | 7.0% |
케다 | 136,482 | 7.3% | 143,200 | 7.2% |
클란탄 | 3,849 | 0.3% | 4,800 | 0.3% |
말라카 | 49,037 | 6.2% | 51,400 | 6.2% |
느게리슴빌란 | 146,214 | 15.2% | 154,000 | 14.9% |
파항 | 63,065 | 4.4% | 66,300 | 4.3% |
페락 | 281,688 | 12.3% | 293,300 | 12.2% |
페낭 | 153,472 | 10.4% | 166,000 | 10.6% |
프를리스 | 2,745 | 1.2% | 3,100 | 1.3% |
사바 | 7,453 | 0.3% | 12,200 | 0.5% |
사라왁 | 7,411 | 0.3% | 7,900 | 0.3% |
슬랑고르 | 679,130 | 13.5% | 712,000 | 13.2% |
트렝가누 | 2,397 | 0.2% | 3,000 | 0.3% |
쿠알라룸푸르 | 156,316 | 10.3% | 163,000 | 10.1% |
라부안 | 641 | 0.9% | 800 | 0.9% |
푸트라자야 | 869 | 1.5% | 900 | 1.0% |
3. 1. 지역별 분포



2020년 현재 말레이시아 인구의 6.6%는 인도인이다.[1]
말레이시아 공동체의 다양한 민족 및 직업별 구분과 인도인 공동체의 말라야 내 지리적 분포 사이에는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 남인도 타밀족이 고무 농장과 철도에서 전국적으로 다수를 차지했지만, 상당수는 페낭과 싱가포르의 부두에서 일자리를 찾았다. 슬랑고르는 절대적인 수치로 볼 때 인도인이 가장 많은 주이며, 느게리슴빌란은 말레이시아 인도인이 인구의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주이다.
주 | 인구 | |||
---|---|---|---|---|
2010년[17] | 2015년 | |||
총계 | 비율 | |||
조호르 | 217,058 | 7.1% | 230,700 | 7.0% |
케다 | 136,482 | 7.3% | 143,200 | 7.2% |
클란탄 | 3,849 | 0.3% | 4,800 | 0.3% |
말라카 | 49,037 | 6.2% | 51,400 | 6.2% |
느게리슴빌란 | 146,214 | 15.2% | 154,000 | 14.9% |
파항 | 63,065 | 4.4% | 66,300 | 4.3% |
페락 | 281,688 | 12.3% | 293,300 | 12.2% |
페낭 | 153,472 | 10.4% | 166,000 | 10.6% |
프를리스 | 2,745 | 1.2% | 3,100 | 1.3% |
사바 | 7,453 | 0.3% | 12,200 | 0.5% |
사라왁 | 7,411 | 0.3% | 7,900 | 0.3% |
슬랑고르 | 679,130 | 13.5% | 712,000 | 13.2% |
트렝가누 | 2,397 | 0.2% | 3,000 | 0.3% |
쿠알라룸푸르 | 156,316 | 10.3% | 163,000 | 10.1% |
라부안 | 641 | 0.9% | 800 | 0.9% |
푸트라자야 | 869 | 1.5% | 900 | 1.0% |
4. 사회
말레이시아 노동 계급에 속하는 말레이시아계 인도인과 도시 중산층 또는 상위 중산층 전문직 종사자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많은 인도인들이 농장에서 일하며 타밀어 학교에 다닌다. 타밀어 초등학교는 연방 정부의 자금 지원을 받지만, 사유지에 있는 타밀어 학교는 정부 보조금을 전액 지원받을 수 없다.[18] 타밀어가 수업 매체로 사용되지만 말레이어와 영어가 필수 과목으로 가르쳐진다. 타밀어 학교는 다양한 연령과 능력을 가진 학생들이 한 명의 교사에게 배우는 단일 교실부터 수백 명의 학생이 있는 대규모 학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농장에서는 학교의 인력과 시설이 부족할 수 있으며, 그곳의 학생들 중 고등 교육으로 진학하는 학생은 거의 없다.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인도인들은 주로 도시 중산층 출신이다.[19]
부미푸트라 말레이인을 우대하는 교육 시스템으로 인해 인도인들의 고등 교육 기회에도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40] 정부 학교에서 인종 차별이 보고되었으며, 인도인 학생들이 민족, 피부색, 또는 신념 때문에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다.[40]
말레이시아 내 인도인 집단 간에는 사회적, 경제적으로 상당한 차이가 존재한다. 1999년 인구 조사에서 말레이시아 인도인은 말레이시아 전문직의 15.5%를 차지했다.[7] 여기에는 의사(28.4%), 변호사(26.8%), 치과의사(21%), 수의사(28.5%), 엔지니어(6.4%), 회계사(5.8%), 측량사(3.0%), 건축가(1.5%)가 포함된다.[20] 그러나 많은 인도인들은 가장 불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 중에도 포함된다. 1970년, 말레이시아 인도인의 약 39%가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가난한 계층에 속했다.[7] 말레이시아의 빈곤율(전국 소득 분포에서 하위 40%)은 인도인의 경우 27.3%였다. 공식 통계에 따르면 공식 빈곤선 이하에서 생활하는 인도인의 비율은 1970년 39.2%에서 2002년 1.9%로 감소했지만, 이 수치는 부정확하다는 비판을 받았다.[21] 2015년에는 인도인의 약 40%가 소득 사다리의 최하위에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41]
초기 남인도 이민자, 예를 들어 타밀족과 텔루구족의 많은 수가 농업 분야, 특히 농장 노동자로 일했다. 1930년에는 전체 인도인의 60%가 이 분야에 종사했으며, 1970년에도 인도인의 45%가 여전히 말레이시아에서 농업에 종사했다. 스리랑카 타밀족은 주로 농장에서 부차적인 행정 및 기술직을 맡았으며, 오늘날까지도 이 직종을 지배하고 있다. 또한 농장에는 보조 및 관리직을 맡은 말라얄리족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농장 중 인도인이 소유한 곳은 거의 없다. 인도인들은 또한 운송 및 통신 분야에서도 두드러지며, 노동자 또는 행정 및 기술 직원으로 활동한다.
많은 인도인들이 사업과 무역에도 종사하고 있으며, 사유 기업의 대부분은 체티아르에 속한다. 시크교도와 기타 펀자브인들은 처음에는 영국에 의해 경찰 및 군대에 복무하도록 모집되었으며, 현대에는 이러한 분야가 말레이족에 의해 지배되고 있지만, 시크교도와 기타 펀자브인의 후손들은 현재 경제의 모든 분야, 특히 전문직, 상업 및 금전 대여 사업에서 발견된다.
정부의 경제 정책에서 제도화된 인종 차별은 인도인에게 주요 경제적 과제이다. 많은 주 정부는 비말레이인이 신청하는 모든 것을 거부한다는 간접적인 의미를 지닌 무빈 정책을 가지고 있다.[48][40][22] 2006년 말레이시아 제9차 계획 보고서에 따르면 말레이시아 인도인은 말레이시아 기업 자산의 1.2%만을 통제했는데, 이는 이전 수치인 1.5%에서 감소한 것이다.[23][24]
5. 문화
말레이시아 인도 요리는 말레이시아 요리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특히 전통 말레이 요리에 강한 영향을 주어 말레이시아에서 카레의 인기를 높였다. 인도 식당은 모든 민족과 종교를 가진 말레이시아인들에게 인기가 좋으며, 일상생활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특히 실시간 축구 경기 중계 장소로도 활용된다. 마막 식당과 노점은 인도 무슬림이 운영하는 식당을 지칭하며, 때로는 '마막'이라는 단어가 모든 인도 식당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로티 차나이, 나시 칸다르, 미 고랭, 파셈부르 (마막 로작)는 말레이시아 고유의 인도 요리이다. 특히 나시 칸다르는 인도 무슬림 식당에서만 판매되며, 그 레시피는 비밀로 유지된다. 말레이시아의 인도 요리는 남인도 요리를 기반으로 하는데, 이는 말레이시아 인도인 대다수가 타밀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탄두리 치킨과 난 같은 북인도 요리도 흔히 볼 수 있다. 이들리, 바다이, 도사 ('토사이'로 표기)와 같은 남부식 아침 식사도 인기가 많다. 아팜은 타밀 가정에서 즐겨 먹는 아침 식사이며, ''이디야팜''은 말레이어로 푸투 마얌이라고 불리며, 이동 판매상들이 주로 판매한다. 무루쿠는 디파발리 때 만들어 먹는 음식이다.
점심과 저녁 식사, 특별한 날에는 쌀밥과 다양한 채소, 고기 요리를 바나나 잎에 담아 제공한다. 양고기(염소 고기)는 ''바루발'' (건식 카레) 또는 ''페라탈'' (걸쭉한 국물이 있는 카레) 형태로 제공된다. 튀긴 쓴 오이, 바나나 칩, 파파담, 라삼, 요거트, 피클 등이 곁들여진다. 디저트로는 파야삼, 할바, 마이소르 파크, 팔고아, 기 볼 등이 있다. 무루쿠, 아디라삼, 푸투 등 일부 인도 음식은 현지화되어 널리 사용된다.
말레이시아 인도인의 종교는 다음과 같다.[31]
인도인 커뮤니티는 주로 타밀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힌두교를 주로 믿는다. 힌두교와 불교는 서기 2세기경 인도에서 말레이 반도로 전파되었다. 고대 케다와 랑카수카의 인도 영향을 받은 왕국들은 말레이-스리비자야 왕국과 타밀-촐라 왕국의 통치 기간 동안 힌두교와 불교를 실천했다.[32]
힌두교는 타밀족 사이에서 가장 많이 믿는 종교이며, 주요 힌두교 및 타밀 신들을 포함한다. 말레이시아의 말라얄리족과 텔루구족의 대다수 또한 힌두교를 믿는다. 시크교는 주로 펀자브인들이 믿으며, 많은 신드족도 말레이시아의 시크교 구르드와라에서 예배를 드린다.
기독교는 소수의 타밀족이 믿으며, 가톨릭, 오순절교, 성공회, 감리교, 또는 루터교 등 다양한 종파가 있다. 말라얄리족 기독교인의 대다수는 가톨릭 또는 시리아 기독교이다.[33]
타밀족과의 무역 접촉은 이슬람 시대 이전부터 시작되었으며, 인도네시아인과 말레이인은 구자라트 상인들을 통해 이슬람에 대해 배우고 아랍 상인들에 의해 더욱 발전되었다. 인도 무슬림 공동체의 대부분은 더 큰 말레이 공동체에 흡수되었으며, 높은 수준의 동화와 혼인이 이루어졌다. 말레이시아에서 타밀 무슬림은 '마마크', 말라얄리 무슬림은 '카카스' 또는 '말라바리스'로 불린다.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큰 힌두 축제 중 하나는 타푸삼으로, 신 무루간에게 헌정되는 축제이다. 타밀 달력의 ''타이'' (1월~2월) 달에 조지 타운, 이포, 쿠알라룸푸르 사원에서 3일 동안 기념된다. 쿠알라룸푸르의 바투 동굴은 전국적인 ''푸삼'' 축제의 장이 되었으며, 42.7m 높이의 무루간 신상이 있다.
속죄 행위로 카바디를 운반하는 의식이 있으며, ''치티라이 파루밤'' 축제와 타밀 신 마리아만에게 바치는 축제에는 불 위를 걷는 의식이 수반된다.[32] 디파발리는 '빛의 축제'로 알려져 있으며, 모든 힌두 공동체가 기념한다. 타밀족은 수확 축제인 퐁갈을 기념한다. 마카르 산크란티는 다른 인도 공동체에서 기념하며, 펀자브인들은 로리라고 부른다.
말라얄리인은 비슈 (말라얄리 새해)와 오남을 기념한다. 텔루구족은 우가디 (텔루구 새해)를 기념하며, 푸탄두 (타밀 새해)와 바이사키 (시크 새해)는 태양력을 기반으로 한다. 마카르 산크란티는 텔루구 공동체에게 중요한 축제이며, 타밀족은 퐁갈로 기념한다.
기독교 신앙을 가진 말레이시아 인도인들은 부활절, 크리스마스, 위령의 날을 기념한다. 인도 무슬림은 라마단을 지키고, 하리 라야 아이딜피트리와 하리 라야 아이딜라다를 기념한다.
인도 문화의 영향은 현대 말레이시아뿐만 아니라 전통 말레이 문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 말레이 민속에는 비다다리, 젠타유, 가루다, 나가와 같이 인도 문화의 영향을 받은 신화적 등장인물들이 등장한다.
- 초기 말레이 문학은 ''마하바라타''와 ''라마야나''와 같은 인도의 서사시에 큰 영향을 받았다.
- 말레이시아의 와양 그림자 인형극과 고전 무용극은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의 에피소드에서 이야기를 가져왔다.
동남아시아와 중국 남부에서 상당수의 타밀 비문과 남인도에서 유래한 힌두교 및 불교 아이콘이 발견되었다. 말레이 반도 타쿠아파에서는 '아바니-나라남'이라는 인공 호수가 '낭구르-우다이얀'에 의해 파여졌다는 내용의 비문이 발견되었다.[34]
서기 779년의 리고르 말레이 반도에서 발견된 비문은 타밀 국가와 말라야 간의 무역 관계를 언급한다.[35] 고대 케다에서는 서기 4세기의 남인도 문자로 ye-dharmma 구절이 새겨진 비문이 발견되었다.[36] 이 비문은 세 면에 걸쳐 ''팔라바 그란타 문자''로 새겨져 있다. 타밀 비문은 산스크리트 비문보다 적어도 4세기 뒤에 만들어졌으며, 초기 타밀인들은 산스크리트어를 후원했다.[35] 체록 토쿤 고대 비문은 1845년 제임스 로 대령에 의해 처음 문서화되었으며, 5~6세기에 말레이시아 북부에서 번성했던 고대 카다람 왕국에 기인한 것으로 여겨졌다.
초기 무역에서 상업적 거래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요소는 관련된 모든 당사자가 이해하는 공통 언어였다. J.V. 세바스찬, K.T. 티루나바우카라수, A.W. 해밀턴과 같은 역사가들은 타밀어가 역사 시대에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서 상업의 공통 언어였다고 기록한다.[35] 15세기에서 19세기 사이에 타밀어에서 말레이어로의 차용이 증가했으며, 17세기에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서신의 일부로 타밀어를 사용해야 했다. 19세기까지 말라카와 기타 항구에서 회계 및 경리에 관한 말레이어 용어는 여전히 대부분 타밀어였다.[10]
타밀어 | 말레이어 | 영어 |
---|---|---|
카다이 (கடை) | 께다이 | 상점 |
카팔 (கப்பல்) | 카팔 | 배 |
바가이 (வகை) | 바가이 | 종류/ ~와 같은 |
토피 (தொப்பி) | 토피 | 모자 |
6. 정치
말레이시아 인도 국민 회의(MIC)는 쿠알라룸푸르에 본부를 둔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인도계 정당으로, 바리산 나시오날 연합의 주요 구성원이다.[27] 말레이시아 인도 진보 전선(IPF)은 바리산 나시오날과 제휴하고 있지만 공식 회원은 아니다. 말레이시아 인민 진보당(PPP)은 당원은 대부분 인도계이며 바리산 나시오날 소속이다. 말레이시아 인민 정의당(PKR)과 민주행동당(DAP)에는 인도계 당원과 국회의원이 많으며, 두 정당 모두 집권 희망 연합(Pakatan Harapan) 연합 소속이다. 소수 야당인 말레이시아 사회주의당(PSM)은 인도계 비중이 높다.[28]
힌두 권리 행동 기구(Hindraf)는 2007년 말레이시아 인도인에 대한 인종 차별에 대응하기 위해 결성되었으며, 같은 해 쿠알라룸푸르에서 대규모 반정부 집회를 벌인 후 금지되었다. Hindraf의 정치 기구는 인권당 (말레이시아)(HRP)이다. 말레이시아 인도 무슬림 회의(KIMMA)는 인도 무슬림 공동체의 이익을 대표한다. 말레이시아 펀자브당(PPM)은 말레이시아 펀자브 공동체를, 말레이시아 실론 의회(MCC)는 스리랑카 타밀 공동체를 대표한다. 기타 인도계 소수 정당으로는 바리산 나시오날 지지 정당인 말레이시아 인도 연합당(MIUP), 말레이시아 마칼 삭티당(MMSP), 말레이시아 인도 정의당(MIJP)이 있으며, 해산된 민주 말레이시아 인도당(DMIP)도 있었다.
2018년 말레이시아 총선에서 인도인 16명이 하원(Dewan Rakyat)에 선출되어, 말레이시아 역사상 최다 인도계 하원의원 기록을 세웠다.[27]
HINDRAF는 현재 희망 연합(Pakatan Harapan) 정부의 동맹이며, 민주행동당 (말레이시아)(DAP) 및 말레이시아 인민 정의당(PKR)과 함께 인도계 대표가 있는 다민족 정당이다.[28] 그러나 HINDRAF는 2019년에 RoS에 의해 해산되었으며, 현재 이 결정에 대한 법원 심리가 진행 중이다.[29]
현재 희망 연합 정부에는 정식 인도계 장관이 없어, 말레이시아 정치에서 인도계 대표성은 부족하다.[30] 유일한 인도계 장관이었던 V. Sivakumar는 내각 개편으로 해임되었다.
7. 주요 인물
8. 당면 과제
말레이시아의 신경제 정책(NEP)과 같은 정부 정책에 의한 제도화된 인종차별과 차별은 말레이시아의 소수 민족인 인도계 말레이시아인을 포함한 비말레이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40] 인도계 말레이시아인의 평균 소득이 말레이계의 소득을 초과한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빈곤층이 상당수 존재하며, 인도계 말레이시아인의 40%가 소득 계층의 최하위에 있다고 주장된다.[41] 빈곤층에 대한 명백한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인도계 말레이시아인은 말레이인과 선택된 원주민을 위해 예약된 말레이시아의 우대 조치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없다.[42][43]
라몬 나바라트남은 NEP가 시대에 뒤떨어졌으므로 개혁되어야 하며, 인종과 종교에 관계없이 빈곤 격차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44][45]
인도계가 직면한 또 다른 과제는 증가하는 이슬람화로 인한 종교적 갈등[43]이며, 2001년 캄풍 메단 폭동과 같은 인도인과 말레이인 간의 공동체 충돌[46]뿐만 아니라 2007년 HINDRAF 집회 동안의 인종 차별과 사원 철거에 대한 항의도 있었다.[47][48] 이러한 요인들은 부분적으로 많은 고도로 숙련된 인도계 말레이시아인이 해외로 이주하는 결과를 초래했으며, 인도 이민자들은 대체로 상향 이동하고 있다. 2017년 조사에 따르면 중등 또는 고등 교육을 마친 인도계 말레이시아인의 42%가 이민을 원했다.[49]
참조
[1]
웹사이트
Current population and estimates, Malaysia 2020 Group
https://www.dosm.gov[...]
2020-07-15
[2]
웹사이트
Census of Population 2010
https://www.singstat[...]
2018-02-04
[3]
논문
From Servitude to Underclass: The Empire’s South Indian ‘Coolies’ in Postcolonial Malaysia
https://www.epw.in/j[...]
2021-05-01
[4]
서적
A History of Malaysia
https://books.google[...]
University of Hawaii Press
2001
[5]
뉴스
Indian Diaspora
https://www.mea.gov.[...]
2023-11-24
[6]
웹사이트
Visiting Indian Diaspora in Malaysia | Diplomacy & Beyond Plus
https://diplomacybey[...]
[7]
논문
The Role of the State in Managing Ethnic Tensions in Malaysia
http://profile.nus.e[...]
2003-11
[8]
논문
Sources of Income Growth and Inequality Across Ethnic Groups in Malaysia, 1970–2000
http://pubdocs.world[...]
2018-01-29
[9]
서적
The Dancing Girl: A History of Early India
Institute of Southeast Asian Studies
[10]
서적
The Indonesian Language: Its history and role in modern society
University of South Wales Press Ltd
[11]
서적
Sejarah SMA/MA Kls XI-Bahasa By H Purwanta, dkk
https://books.google[...]
[12]
간행물
European Journal of Social Sciences – Volume 7, Number 3 (2009)
[13]
서적
The Handbook of Tamil Culture and Heritage
International Tamil Language Foundation
[14]
서적
Cholas
University of Madras
[15]
서적
Malaysian World-view
https://books.google[...]
Inst of Southeast Asian Studies
1985
[16]
서적
Malaysian World-view
https://books.google[...]
Inst of Southeast Asian Studies
1985
[17]
웹사이트
2010 Population and Housing Census of Malaysia
http://www.statistic[...]
Department of Statistics, Malaysia
[18]
웹사이트
A Short History of Tamil Schools in Malaya/ Malaysia
https://grfdt.com/Pu[...]
[19]
잡지
Breaking the pattern
1990-06-07
[20]
웹사이트
Unite as a community
http://www.thestar.c[...]
2013-11-23
[21]
웹사이트
Ensuring Effective Targeting of Ethnic Minorities: The Case of Low Income Malaysian Indians
https://www.ohchr.or[...]
[22]
웹사이트
Why huge disparity in budget allocation for races, Lim asks Ismail
https://www.freemala[...]
2023-12-12
[23]
웹사이트
Marginalisation and the Indian Community in Malaysia
https://dr.ntu.edu.s[...]
Nanyang Technological University
2007
[24]
서적
Ninth Malaysia Plan 2006-2010
http://www.epu.jpm.m[...]
2020-03-23
[25]
웹사이트
GOPIO Announces Pravasi Bharatiya Community Service Awards
https://nriol.com/co[...]
2023-12-12
[26]
웹사이트
Indian overseas Population - Indians in Malaysia. Non-resident Indian and Person of Indian Origin
https://nriol.com/in[...]
2023-12-12
[27]
뉴스
Malaysia Gets 16 Indian-Origin Members of Parliament
https://littleindia.[...]
2018-06-07
[28]
웹사이트
Malaysian Indians have dropped MIC, opt for multiracial parties
https://www.nst.com.[...]
2018-06-07
[29]
웹사이트
RoS Stumbling block for GE14
https://www.freemala[...]
2023-12-13
[30]
웹사이트
Ramasamy urges Indian deputy ministers to resign over inadequate representation
https://www.freemala[...]
2023-12-14
[31]
웹사이트
2010 Population and Housing Census of Malaysia
http://www.statistic[...]
Department of Statistics, Malaysia
2012-06-17
[32]
서적
Indians in Malaysia and Singapore
https://archive.org/[...]
Oxford University Press
[33]
논문
Diversity Among Indian Christians in Peninsular Malaysia
https://www.jstor.or[...]
[34]
논문
Takuapa and its Tamil Inscription Part I.
[35]
서적
Tamil Influences in Malaysia, Indonesia, and the Philippines
s.n.
[36]
웹사이트
Ye Dhamma - The Verse of Causation
http://www.virtualvi[...]
Vinodh's Virtual Cyber Space
2012-04-02
[37]
서적
The Australian People: An Encyclopedia of the Nation, Its People and Their Origins
https://books.google[...]
Cambridge University Press
[38]
서적
The Australian People: An Encyclopedia of the Nation, Its People and Their Origins
https://books.google[...]
Cambridge University Press
[39]
서적
A History of Kuala Lumpur 1856–1939
https://books.google[...]
The Malaysian Branch of the Royal Asiatic Society
[40]
웹사이트
Malaysia Racial Discrimination Report 2021
https://komas.org/do[...]
2023-11-24
[41]
뉴스
YPS: 40pc of Malaysian Indians still at bottom rung of the income ladder
http://www.themalaym[...]
2015-05-15
[42]
뉴스
Race-based affirmative action is failing poor Malaysians
https://www.economis[...]
2017-05-18
[43]
뉴스
Malaysian Indian leader seeks affirmative action
https://www.reuters.[...]
2007-12-06
[44]
뉴스
Malaysia needs to reform its New Economic Policy: Sin Chew Daily contributor
https://www.straitst[...]
2020-11-25
[45]
간행물
Whither Malaysia's New Economic Policy?
https://www.jstor.or[...]
1990-Winter
[46]
뉴스
Ethnic strife shakes Malaysia
http://news.bbc.co.u[...]
2001-03-18
[47]
뉴스
Malaysian Indians: a disadvantaged community
http://www.thehindu.[...]
2007-12-07
[48]
뉴스
Indian protest rocks Malaysia ahead of polls
https://www.reuters.[...]
2007-11-25
[49]
웹사이트
Malaysia 'must address issue of brain drain'
https://www.cipd.asi[...]
2017-08-23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